잃어버린 도시 아이가 발견되다
키르벳 엘 마카티르(Khirbet el-Maqatir)
여호수아 7, 8장은 아이 성과의 두 번의 전투를 이야기하고 있다.
W. F. 알브라이트가 1924년에 아이와 관한 글을 발표한 이후로
그동안에는 엣 텔(Et Tell)이 아이의 장소로 알려졌다.
그러나 엣 텔은 성경에서 말하는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1838년에 에드윈 로빈슨이 그 지역을 조사했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은 엣 텔이 아닌 다른 장소, 키르벳 엘 마카티르를 아이로 지목했다.
1995년에서 2017년까지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BibleArchaeology.org)는
키르벳 엘 마카티르를 발굴하여 요새화된 주거지를 발견했는데,
그곳은 여호수아의 시대 때부터 존재했으며 불에 타서 파괴되었다.
ABR이 키르벳 엘 마카티르를 발굴할 때 책임 관리자였던
개리 바이어스는 이곳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아이라는 것을 세 가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정확한 시대에 정확한 장소에 정확한 물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정확한 장소
여호수아 시대의 아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지리적, 지형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요건들에 부합해야 한다. 그것은
1. 벳 아웬 근처여야 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 7:2
2. 벧엘의 동쪽이자 근처여야 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여호수아 7:2,12:9
3.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그가 약 오천 명을 택하여 성읍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키니
여호수아 8:9,12
4. 아이의 북쪽에 이스라엘 군이 진을 쳤던 군사적으로 중요한 언덕이 있어야 한다.
그와 함께 한 군사가 다 올라가서 그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쪽에 진 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더라
여호수아 8:11
5. 아이 왕이 여호수아와 군인들을 볼 수 있는 북쪽의 얕은 골짜기에서 가까워야 한다.
이와 같이 성읍 북쪽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쪽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나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 8:13-14
데이빗 리빙스턴은 엘 비레(el-Bireh)를 벧엘로 보았다.
그의 연구에 더하여 고고학자인 브라이언트 우드는
지금의 엘 비레가 벧엘이고, 베이틴은 벳 아웬이며,
오직 키르벳 엘 마카티르만이 위에 나온 아이의 요건들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했다.
지리적으로 이곳은 벧엘/엘 비레의 정동쪽이며
벳 아웬/베이틴에서 남동쪽으로 1마일 위치에 있다.

오늘날 키르벳 엘 마카티르 주변의 지형을 보면 전쟁이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볼 수 있다.
북쪽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언덕으로
제벨 아부 암마르(Jebel Abu Ammar)라고 불리우며
여호수아의 주력 군이 진을 쳤던 곳이다.
그곳과 키르벳 엘 마카티르 사이에는 얕은 계곡이 있어서
아이 왕이 이스라엘 군이 싸우러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옆 서쪽에는 와디 셰반(Wadi Sheban)이라 부르는
가파른 계곡이 있는데 여호수아의 매복군이 이곳에 숨었다.

정확한 물건
아이는 정확한 장소만이 아니라 정확한 물건들이 있어야 한다.
특히
1. 요새화된 성벽(수 8:1-2에 나오는 아이는 요새화된 곳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여호수아 8:1-2
2. 정문이 북쪽을 향해야 한다.
그와 함께 한 군사가 다 올라가서 그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쪽에 진 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더라
여호수아 8:11
3. 장소가 비교적 작은 곳이어야 한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여호수아 7:3,10:2
4. 여인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
여호수아 8:25
키르벳 엘 마카티르의 발굴을 통하여
중기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작은 국경 요새가 드러났다.
그 크기는 2.5에이커(약 1만 평방미터)에 불과하지만
북쪽과 서쪽에서 발견된 요새 성벽의 기초는 너비가 약 4미터 정도였다.
요새의 북쪽에서는 사방구조의 성문(four-chambered gate)이 발굴되었다.
성문의 통로에서는 문을 끼울 수 있는 돌 두 개가 발견되었고,
근처에서 또 다른 돌들이 발견되었다.

여호수아 8장 25절을 보면 아이 성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이것은 국경 군사 요새로서는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2009년에 이것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나왔다.
(죽은) 아기를 묻는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아가의 뼈가 그 주변에 흩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제의 및 장례용 항아리의 유형을 보면
이 아기는 기원전 1,500년경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키르벳 엘 마카티르에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비잔틴 시대 사람들은 성경적 장소들 위에 그들의 교회를 짓는 일이 많았는데,
아이를 물리친 이스라엘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수도원을 지었을 수도 있다.
정확한 시간
성경적으로 아이와의 전쟁 및 정복은
기원전 1406(후기 청동기 I 시대 말)이었을 것이다.
이 연도는 출애굽기를 기원전 1446년으로 보고,
왕상 6:1, 삿 11:26-27; 행 13:19-20
그리고 대상 6:33-38에 나오는 계보를 통해서 추론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아이의 후보지들은 다음의 조건들에 맞아야 한다.
1. 기원전 15세기의 거주 흔적
2. 기원전 15세기에 불에 타서 파괴된 흔적
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여호수아 8:19,28
키르벳 엘 마카티르의 발굴을 통하여
후기 청동기 I 시대에 해당되는 많은 토기들이 발견되었는데,
그중에서 많은 수가 그 지역 전체적으로 일어난 대화재에 의하여 불탄 것들이었다.
이것은 여호수아 8장 28절에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라는 기록과 일치한다.
원문 출처: https://biblearchaeologyreport.com/2019/04/12/biblical-sites-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