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아 돌로 로사(Via Dolorosa)!
바로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총독 본디오 빌라도로부터 십자가형을 선고 받은 예수님은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메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길을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 로사Via Dolorosa]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그 길이 어디에 있느냐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으로 알려진,
가장 많은 순례객들이 찾는 십자가의 길은
14개 지점으로 의미를 두고 순례하게 하고 있습니다.
1지점 : 본디오 빌라도가 재판을 하고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한 곳
2지점 :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고 채찍질을 당한 곳
3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으로 쓰러진 곳
4지점 : 예수님이 슬퍼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5지점 : 구레네 시몬이 예수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진 곳
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곳
7지점 :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
8지점 :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여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신 곳
9지점 :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
10지점 : 로마 병사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
11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
12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곳
13지점 :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서 눕힌 곳
14지점 : 예수님이 묻히고 부활하신 곳
(11지점부터 14지점 까지는 성묘교회 안)
이 길은 '중세 십자군의 전승'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어진 길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 정한 길인 것이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1지점부터 14지점까지 어떻게
세세히 알았을까요?
사실 이 지점들은 연구와 고고학 발굴에 의해서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가면서
인류의 죄를 대신 감당한데 대한
은혜와 감를 기억하는 하나의 의식으로 카톨릭 교회가 이러한 전통을 채택하고 재연하면서
종교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카톨릭의 전통을 우리도 순례하면서 보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는
히브리대 교수인 시몬 깁슨 박사가
새로운 십자가의 길을 이야기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1지점은 안토니우스 요새입니다.
그런데 시몬 깁슨 박사는 이곳이 아니라,
헤롯 궁전의 위치에서 1지점이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을 재판한 곳은 안토니우스 요새가 아니라, 헤롯 궁전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형광펜으로 그린 길이 시몬 깁슨 교수가 주장한 길>
이유는 이러한데,
빌라도는 평소에는 가이사랴에서 통치를 하다가
유대 절기에만 간혹 일어나는 반란으로부터,
유대 민중들을 감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전통적 카톨릭 제 1지점인 출발지인 안토니우스 요새는
빌라도가 거주한 곳이 아니라 일반 로마 군인들의 막사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요세푸스의 기록에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은 항상 헤롯 궁전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판은 빌라도가 머무는 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헤롯 궁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카톨릭이 주장한 안토니우스 요새에서의 시작과는 정반대의 길이 되어집니다.
전통 카톨릭 교회 : 안토니우스 요새 -> 성묘교회
시몬 깁슨 교수 : 헤롯 궁전 -> 성묘 교회
저는 지난 2월 이스라엘 여행 방문시 이것을 좀 확인해 보고자
두 코스다 다녀왔었는데요.
특별히 시몬 깁슨 교수의 주장을 좀 더 깊이 보고자
헤롯 궁전을 살펴봤습니다.
욥바 게이트 옆 다윗 성전 박물관 옆이 헤롯 궁전 터인데요.
<네모칸이 헤롯 궁전 터 / 동그라미는 히든 게이트>
욥바게이트에서 성전 안쪽길 말고, 바깥쪽 길(도로쪽)을 쭉 따라 내려가면
시온게이트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 계단 바로 전에 보면 히든 게이트라는 유적지가 하나 나옵니다(사진에서 노란색 동그라미) 히든 게이트는 헤롯 궁전에서 바깥으로 탈출 할 수 있는 작은 문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체포는 유월절에 이루어졌습니다.
가야바와 제사장 무리들은 유월절이라 이방으로부터 부정타는 것을 막기 위해
성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빌라도를 만나야 했는데요.
이 히든 게이트가 그 장소로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히든 게이트 흔적>
<당시 히든 게이트>
요한복음은 빌라도가 예수와의 일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제사장의 통치자인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고 말합니다(18:28).
빌라도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는 헤롯 궁전에 머물렀다는 것이 맞다면,
예수를 이곳으로 끌고 와야 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유대인들이 '이방' 총독이 머물고 있는 지역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들에게로 나갔”고(29절),
“다시 관저로 들어갔다”(33절)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심문한 후 "밖으로 유대인들에게로 돌아가"(38절)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했습니다(19:1).
이것은 그가 예수를 다시 안으로 데려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가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시고 자색 옷을 입고
군인들에게 학대를 당하신 후에 빌라도는 “다시 나갔습니다”(19:4).
이때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4절).
빌라도는 비웃는 듯한 어조로 유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5절).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고
예수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비난을 들었을 때,
빌라도는 “다시 관저에 들어가”(9절) 예수님과 이야기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데리고 나가 돌을 깔은 곳 과 아람어로 가바다라 하는 곳에서
재판석에 앉게 했습니다 (13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요구를 더하자 빌라도는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16절).
<예수님이 심문 당하던 재판석(베마) 바깥쪽>
이 요한의 기록이 이루어진 곳이 히든 게이트입니다.
이곳은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체포해 데리고 온, 가야바의 집과 가깝게 위치해 있습니다.
안토니우스 요새가 빌라도의 법적이라면, 빌라도를 만나러 성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들은 유월절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전통 카톨릭 교회의 주장보다는
시몬 깁슨 교수의 주장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의 곳이라 하는 곳으로 나가시니 그곳은 아람어로 골고다라 하니라.
거기서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다른 두 사람을 그와 함께 좌우편에
하나는 예수를 그 사이에 못 박으니라 (17-18절).
요한은 골고다를 십자가 처형 장소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전통 카톨릭 교회와 시몬 깁슨 교수는
지금의 '성묘 교회'가 골고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처음 길과 중간 길은 다르지만 마지막은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가지 더 주장하고 싶은데요!
골고다가 지금의 성묘 교회가 아니라 올리브 산(감람산)이라면?
개인적으로는 골고다를 올리브산(감람산)으로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몬 깁슨 교수가 말하는 시작점은 같지만 중간과 끝점은 다르게 됩니다.
올리브 산(감람산)은 예루살렘 성벽안이 아닌 동쪽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리브산이 골고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른 회에 이야기 하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는 주장까지 하면 십자가의 길은 세군대가 되는데요,
예루살렘을 여행하게 된다면 세 곳다 방문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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